20190104

2019. 1. 4. 04:41

190104 죄 사함의 권세를 인정하면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립니다 (막2:1-12)



  하나님은 참으로 크시다. 중풍 병자는 육체의 치유만을 바라며 예수님 앞에 나아갔지만, 예수님은 병자에게 더 필요한 죄 사함의 은혜까지 주셨다.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지식으로 보인 것을 판단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 지식으로 감히 이해할 수 없는 크신 분이시다.


  초등부 수련회 때, 정 전도사님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분이 아닌, 만드시는 분"이라 가르쳐주셨다. 그 크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만들어 가신다. 작고 보잘것없는 나의 삶을. 시편 39편 5절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말씀 같이. 그러니 사실 세상에서 두려울 건 없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두려워한다. 왜?

  첫사랑 잃은 때를 되짚어 보았다. 2018년 5월부터라 생각했는데 이보다 오래되었더라. 내가 첫사랑을 잃은 건 2017년부터였다. 나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믿음을 잃어갔다. 정말 단순하게, 믿지 않는 자들은 모든 일이 잘되는데 나는 그 정도는커녕 평균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이 파도처럼 요동칠 때 주님을 찾아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란 모래 위에 성을 지었더니 얼마 못 가 와르르 무너졌다. 또 이때다 싶듯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무너진 성을 다시 모래 위에 지으려니 모든 결단이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 사실에 또 스스로 정죄하고 넘어지고. 수십 번 반복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니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크리스마스 무언극을 준비하며 찬양을 수십번 듣고 묵상했다. God is God and I am not. I can only see a part of the picture he is painting. God is God and I am man. So I'll never understand it all for only God is God. 간단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아마 무언극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7절이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요13:7)


  하나님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다. 주님을 바로 알길 원한다. 모래가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세우길 원한다.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믿으면 된다. 신뢰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달 간 '안 믿어지는 걸 어떡해요'라며 불평했다. 하나님이 먼저 내게 믿음을 주셔야 순종이든 감사든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간절했나? 믿음을 위해 노력해보았나? 치열하게 죄와 싸워보았나? 중풍 병자를 데려온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예수님을 찾았듯, 그만한 열정이 있나? 대답하기 부끄럽다.

  예수님은 네 사람의 행동을 믿음으로 간주하셨다.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감, '나중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함도 믿음에 포함된다고 한다. 올해 내게 주신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도 붙잡고 믿음을 위해 기도하겠다. 오늘 동역자에게 중보기도도 부탁하겠다. 하나님 나를 만나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겠다.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게 하소서.


1. 하나님께 만나 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하기

2. 동역자에게 1번의 중보기도 부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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