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9

2019. 4. 9. 10:13

190409 주님의 형상을 이루는 사랑의 수고 (갈4:12~20)

 

저녁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서,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잊고 있었습니다. 개인기도시간에도 내 코가 석자란 생각에 교회를 위한 기도는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내 믿음도 없어서 등의 이유로 중보하지 않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변질된 갈라디아 성도들의 모습이 꼭 나를 보는 듯 합니다. 작년 초에만 해도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 없는 길을 만들고 열어주신다는 소망과 확신에 고난이 참으로 유익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싶고, 머지않아 간증이 될 순간에 동참한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한두달도 가지 않았습니다. 금세 불평불만이 나왔고 도대체 언제 역사하시냐며 답답해하고 의심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말씀에서 바울사도는 나를 포기하기는 커녕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가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말합니다. 말씀에서 허물과 죄를 덮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공동체에 실천하는 리더 바울의 모습도 봅니다. 나의 큰 죄도 덮어주셨는데, 나는 작은 섭섭함만 느끼면 아주그냥 돌에 새겨서 사랑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곤 했습니다.

나의 오만함과 교회를 사랑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기도를 다시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사랑을 알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너무한다'라는 속상함에 연락을 끊었던, 교회를 떠난 자매들에게도. 기도하고 다시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사랑의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오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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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2019. 4. 8. 09:48

190408 자녀의 신분과 특권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갈4:1~11)


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천국 기업을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고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와 평안을 누릴 특권을 받았습니다. 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를 잊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완전하고 전적으로 그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연약함, 강팍함을 이유로 호적에서 파버리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종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행위에 얽매이고 노력을 중시하며 짐을 스스로 지고 있습니다. 백날 두려워하고 부담을 느낍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깨달음에서 변화까지 한번에 속전속결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계속 돌아보고 죄가 드러나는 이 시간 또한 허락하셨고 내게 유익임을 믿겠습니다. 첫 은혜 받았던 순간을 계속 계속 묵상하고 생각해보라 하셨습니다. 정말 자유했고 내 생명보다도 주님을 귀하게 여겼던 때를 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권면받은대로 반드시 앎에서 믿어지게 해주실, 변화시켜주실 성령님께 미리 감사기도 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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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4

2019. 4. 4. 11:29

190404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면 내가 복음의 진리대로 삽니다 (갈2:11-21)


동아리 현 회장이 임의로 공금을 사적유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나는 지인을 통해 지난주에 미리 듣긴 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납득도 안되고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에 대해 그저 변명만 늘어놓고 어떤 대책이나 대가도 치루지 않으려는 모습에 솔직히 화도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있을 동아리 모임 때 당사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사적으로 사용한 금액만큼 채우고 학생회에 알려 전례에 따른 처벌을 받게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은 뒤 판단에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나의 이런 생각을, 결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생각해봐도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크리스찬은 잘잘못을 논쟁하는 일에 앞서기를 삼가하라는 말씀도 떠오릅니다.


분명 그 친구의 행실은 진리에 비춰봐도 올바르지 않은데..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름 설명을 해봅니다. '공동체에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지않고 이렇게 하나둘 그냥 넘어가다보면 그 모임는 지속될 수가 없어요.' '이건 저 친구를 위해서라도 고쳐줘야 해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잖아요.'

제가 사함받은 죄가 더 큰 것도 아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당. 일단 감정적인 화로 하는 행위나 말에는 선한 영향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니, 내 마음을 놓고 모임 전까지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그 친구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징계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내가 받은 은혜와 용서의 깊이를 아직 마음으로 알지 못하기에 베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알기원합니다. 묵상하겠습니다. 오늘 모임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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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2019. 4. 3. 09:51

190403 복음의 진리를 전하도록 은사를 따라 부르십니다 (갈2:1~10)


지난주 결단의 연장선으로 한 친구가 약속을 잡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한번 보자'고 그냥 통상적인 말인줄 알았는데 12일 금요일 학교엘 가니 만나자고 합니다. 시간을 내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단둘이 만난 적도 없어서, 이걸 어찌해야되나 싶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답장도 천천히 하고 돌려돌려 거절하려 했습니다.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 친구가 더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단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내내 복음전파에 관한 말씀들이 마음을 찌릅니다. 그래서 일단 오후에 1시간 정도 보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내 몸을 칩니당..


친구의 얘기를 들어주고 한번이라도 다시 예배를 권하자라 마음 먹긴했지만, "주님, 나는 이런 쪽으론 은사가 없는데요?"란 생각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도 보이듯 주님이 각각 맞는 자리에 세우시고 부르십니다. 8절 베드로를 할례자에게 바울을 무할례자에게 맡기셨듯. 우연같아 보이는 일련의 상황들이 다 주님이 인도하고 계신 것임을 보니 조금은 평안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복잡하게 고민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고 기도로 준비하겠습니다. 만남도 주님께서 예비하셨을 줄 믿겠습니다. 만날 때까지 중보기도도 요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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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2019. 4. 2. 09:24

190402 나를 부르신 그분께 삶의 방향도 있습니다 (갈 1:11~24)


어제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시험을 100일 가량 앞두고 전국시행 모의고사가 있는데, 4번 모두 주일 오전 9시로 공지되었습니다. 예상했던 것이었고 선택이 고민되는 건 아니었지만, '또 뒤쳐지는구나'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위에선 '이거 꼭 봐야하는데', '선배들이 무조건 다 보랬는데'란 말이 계속 들렸고 나중엔 날 걱정해줬습니다.
읽어야할 책도 많고, 고난주간이라 다같이 결단해 행해야할 것도 많고, 그외에도 개인적으로 결단한 것, 공부해야할 것들이 쌓인 걸 보면서 너무 서러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시기, 집중할 것이 많을 때 항상 교회 일이 밀려왔습니다. 아니 늘 많았는데 내가 해야할 일이 생기면 그것들이 다 부담이 됩니다. 어제는 되돌아보면 볼수록 놓친 것들이 보였습니다. 크고 작은 갈등을 겪더라도 항상 결국 하나님을 선택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예진아 동기를 돌아봐' '하나님이 하나도 받지 않으셨을수도 있어'라고 권면하겠죠. 늘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근데, 내가 그럼 사람 보고 선택했겠습니까? 내 보여지는 모습 위해 선택했겠어요? 왜 항상 하나님을 위한 모든 일은 오직 기쁨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정말 싫은데, 정말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몸을 쳐서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어요.
부르심 그대로 걸어갈겁니다. 물러서지 않을 거고 멈출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감당해야할 것이 크게만 느껴집니다. 오늘 말씀에선 감당하기 위해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어제에 이어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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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2019. 4. 2. 08:20

190401 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갈1:1~10)


어제 지도자반 중, 꽤 오랜시간 고민했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알게 되면, 너무 기뻐서 사람들을 찾아가 전할 수 밖에 없어'란 문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성령 체험 곧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밝아지고 복음 전함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모습들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모습만 정답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낯가리고 복음전함에 능숙하지 못한 스스로를 보면서, 내가 구원의 기쁨을 모르나? 구원받지 못했나?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나? 계속 정죄했습니다.
어제 들은 답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방법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분명 구원의 은혜를 알고 누리는 자는 삶에서 그 향기가 풍겨져나온다 했습니다. 말 속에 행동 속에 생각 속에 늘 주님이 함께하실테니 말입니다.
덕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꼈습니다. 나는 정말 복음을 나타내는, 새생명을 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나의 삶은 본문 10절이 말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모습이 주였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모습이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좋게 할 그리스도의 종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말씀에선 간다하게 "복음으로 충분하다"합니다.
성경퀴즈대회 이후 말씀에서 멀어진 모습을 회개합니다. 결단할 말씀읽기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자기전으로 미루니 읽지 못하고 잠들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큐티를 마치고 바로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롭게 알게 된 부활의 의미 소망을 묵상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이 삶의 기준이 되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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