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죄 사함의 구세주, 그분은 하나님 아들 (마27:45-56)
주는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는 교회 영상들을 보며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당을 간게 작년 12월이 마지막이었고, 청년들과 종종 연락을 주고 받지만 함께 모인 것도 작년이 마지막이었다. 최근에 얼굴 봤지만 하나님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각자의 삶이 너무 바빠지니 시간을 내는 게 너무 부담이란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슬슬 걱정이 되었다. 내 믿음생활 이대로 괜찮을까?
나도 당장 시험을 앞두고 있어 4월 말부터 거의 매 주일마다 모의고사를 치른다. 예전엔 주일에 당연히 예배를 빠질 수 없고 맡은 사역도 많아 주일에 있는 시험은 보지 않았다. 그게 옳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큰 고민 없이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갔다와서 예배드리면 되지란 생각으로. 이런 내 모습에 두려움이 생긴다. 나 정말 괜찮나? 심각하게 둔해진 건 아닐까?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예배 때문에 주일에 시험 안보던 걸 다 아는데, 그 때보다 올해 좋은 성적을 내면(내긴 해야한다. 올해 꼭 가야지.) 그건 정말 본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혼란스러울수록 내 마음이 지금 어딜 향하고 있는지 봐야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난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나요? 내가 날 속이고 있는건 아니겠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내 고백이 진실된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말씀으로 내 마음을 밝히 비춰주세요. 고난주간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더 깊이 알기 원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0210401
십자가에 못 박히신 만왕의 왕 (마27:27-44)
주님의 고난은 단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받았던 모든 고난과 수치, 조롱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 40절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말은 광야에서의 마귀의 것과 다름 없다.
도대체 왜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온갖 수치를 당하셨을까? 왜 그 조롱을 묵묵히 감당하셨을까?
히브리서 12장 2절은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풂으로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한다.
그럼 나는 그런 주님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의 말과 행실은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 있나? 내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기뻐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항상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수험생인지라 삶이 매우 반복적이고 잔잔하지만 묵묵히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힘내자.
20210329
부끄러운 실패, 철저한 깨어짐 (마26:69-75)
최근 친구의 인스타를 보다 마음이 상했다. 교회를 떠난 친구들끼리 모여 찍은 사진 설명에 '교회는 없어졌지만' 라는 문장을 보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나님께 되물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없어진건가요? 여전히 남아 예배하는 자들이 있는데 다수가 떠났다해서 그것을 두고 교회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부끄럽게도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까지도 그 화가 없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그들의 죗값은 내가 물을 수 없지 라며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을 뿐.
실패. 누군간, 아니 그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2020년 1월에 실패했다 말할테지만, 부끄럽게도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 이전부터였다. 순종보단 복종에 가까운 상태, 하나님 말씀보단 사람의 말이 더 크게 다가왔던 상태, 정결케 함에 집중하기보다 남의 더러움에 집중하던 상태. 모임의 시작은 선한 의도였을지 몰라도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이 공동체 안에 얼마나 많았나. 말씀에서 길을 찾기보다, 하나님께 묻기보다, 다른 방법을 최우선으로 두고 따랐으니..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안에 하나님이 없었구나, 그저 사람이 중심이었구나를 깨달았다.
다시 일어나야 되는데, 아.. 쉽지 않더라. 일단 무작정 발버둥쳤다. 이미 떠난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가엽게 여기고, 비난해도, 남아있는 우리가 모여보자. 자주 보자. 우린 괜찮아. 할 수 있어. 잘 하고 있어. 그런데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모일 수 없게 되자 다시 되돌아갔다.
글이 길어졌다. 결론은 나의 이 깨어짐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가겠다. 덜 깨어진 부분이 있다면 그조차도 주님 손에 맡긴다. 내 힘으로 하니 자꾸 실패했다.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입술과 행위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다시 은혜의 순간으로 이끌어 주세요. 다시 기도와 말씀 시작합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함께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과 남아 있는 모든 성도들 마음 붙들어주세요. 다시 하나되게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210329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탓하지 않습니다.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험한 세상 옳은 길 비추는 건 말씀 뿐임을 알았기에 다시 열어봅니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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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190501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삶, 감사와 기도로 채웁니다 (골1:1~14)
기도제목을 돌아보았습니다. 주로 내 만족이나 삶의 문제 해결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9~12절이 나의 기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채워주세요(9절)
그래서 모든 일을 주님 마음에 합하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길 원합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 자라나길 원합니다(10절)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나를 강하게 붙드셔서 나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넘어지지 않고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11절)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두신 줄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립니다(12절)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기도의 초점이 세상의 것들에만 맞춰져 있진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기도하며 나의 초점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90430
190430 기도의 능럭으로 새로워지는 공동체 (약5:13~20)
1. 누가 아프다고 하면 습관적으로 약은 먹었는지? 병원 다녀왔는지?를 물어봅니다. 약을 먼저 건네주기도 합니다. 부차적인 방법들이 우선되곤 합니다. 특히 아픔과 관련해서요. 오늘 본문 말씀 14절 병든 자를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십니다. 아파서 약을 먹기 전에, 파스를 붙이기 전에, 졸려서 커피를 마시기 전에 먼저 기도해보겠습니다. 아프다고 말하는 지체를 위해서도, 학교 동기위해서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4:30)
2. 나는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전에는 나는 '사랑으로 말했고, 이것이 분명 옳으니 상대가 어떻게 받든 올바르게 권면한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면을 가장한 정죄였습니다. 요새 경험들을 통해 저 생각이 많이 깨지고 있습니다. 나는 원래 말이 날카로워서 어쩔 수 없어, 나는 원래 직설적이라 어쩔 수 없어 는 핑계였습니다.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부셔져야함을 느낍니다. 참 많이 모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나는 얼마나 강압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신앙을 주장했는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찌르고 쑤시고 다녔는지.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회개합니다.
물질, 시간, 체력 등 내 유익 먼저 따지느랴 미룬 교제가 있습니다. 잠깐이라도 보고 오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깊이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묵상하고 기도하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